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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전기전자

[공학윤리] 트롤리 딜레마, 순간의 선택

by 케케84 2020. 8. 30.

여기 유명한 논제가 하나 있다.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당신이 스위치를 바꾸면 1명이 사망하고,

스위치를 바꾸지 않으면 5명이 사망한다. 다른 선택은 없다.

열차를 멈추는 능력도 없다.

당신은 단지 레버만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은?

 

트롤리 딜레마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루어진 유명한 논제이다. 대학에서 공학윤리를 배울 때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딜레마 문제였다. 1970년대부터 공학윤리가 활발하게 여겨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매번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있다. 

 

그림이 일단 5명 쪽으로 향해서 그렇지, 예전의 트롤리 딜레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한 명이 죽고, 아니면 5명이 죽는다였던 거 같은데,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없을 거 같다. 단순하게 내 선택에 있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거 같아.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딜레마'라는 단어부터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선택"

 

그래서 딜레마에 빠졌다는 표현을 쓴다.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여도 곤란한 상황, "왜 신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나이까" 하는 느낌인 것이다. 최근에는 이 딜레마 문제에 있어 양심, 윤리적 책임, 더 나아가 심리적인 문제까지 결부시키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실제로 트롤리 딜레마의 변형 문제가 있다. 

 

선로에 5명의 사람이 묶여있고, 당신은 뚱뚱한 사람과 같이 있다.

자신이 떨어지면 기차를 멈출 수 없지만, 뚱뚱한 사람을 밀면 5명을 구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

 

이렇게 변형된 문제를 가지고 당신에게 딜레마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여기에는 심리적인 문제를 더하게 된다. 첫 번째 나온 레버 당기는 문제에서는 10명 중 9명이 레버를 당긴다고 하였다면, 아래 변형 문제에 관하여는 10명 중 2명만이 뚱뚱한 사람을 밀어 기차를 멈추겠다고 이야기하였다.

 

만약 여기에서 첫 번째 문제에서 더 나아가 5명과 1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지인,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물음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실제로 체코에서는 배가 오면 다리를 올리고 기차가 지나가면 다리를 내려서 기차를 통행시키는 직업의 교환수가 있었는데 이러한 실제 딜레마 사건도 있었다. 체코의 다리 교환수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 수십, 수백 명이 타고 있을 기차를 안전하게 통과시키는 일이 있었다. 단순히 글로 써서 그렇지 영상으로 보면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흐르게 만드는 영상이었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나올 것이다. 

 

나에게 첫 번째 문제든, 두 번째 문제든 어떠한 선택을 하라고 하면 아무튼 못한다. 이러한 상황이 없길 바랄 뿐이다.

 

딜레마는 공학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논제 중에 하나이다. 최근에 핫한 IT 이슈가 자율주행 자동차이다.

운전자를 보호할 것이냐 보행자를 보호할 것이냐? 누굴 보호해야 하는가? 차를 구입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운전자를 보호하는 차를 구입할 것이다. 그러면 보행자보다 운전자를 보호하는 차를 만들어야 하는가? 윤리적으로 보면 보행자를 보호하는 차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위급한 상황에서 인공지능은 당연한 선택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충분한 논쟁거리가 되는 것이다.

 

공학윤리에서 가장 많이 다룬 부분 중에 하나는 생명공학이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어떠한 특정 재료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재료는 사람의 태아에서만 나오는 귀한 재료라고 생각해보자. 근데 태아 한 명에서 나오는 재료가 100명의 암환자를 살린다고 보면, 사육장처럼 태아를 키워서 재료만 얻고 태아를 죽이는 것이 맞는가? 윤리적으로 보면 100% 잘못된 선택이다. 생명을 만들어놓고 필요 없으니 버린다는 것은 맞지 않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논제이다.

 

실제로 약 15년 전쯤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줄기세포

 

손상된 기관에 넣어 주면 재생되는 "꿈의 치료법"이다. 모든 기관의 세포로 분화 가능한 배아 줄기 세포를 이용하여 면역 거부가 없는 맞춤형 줄기 세포를 만들 수 있다. 난자와 정자를 통하여 수정하고 배아를 생성시켜 공급받은 후 배아를 파괴해야 하는 생명윤리 문제가 있었다.

 

사실 줄기세포 문제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가장 큰 업적으로 남을 수 있었지만, 수치와 흑역사로 전략하였다. 난치병 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그대로 절망을 안겨준 사건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척추의 신경이 끊어져 휠체어를 평생 타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끊어진 신경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실제로 클론의 강원래가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이후에 열린음악회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다음 열린음악회에서는 과거의 화려한 몸놀림을 다음에 볼 수 있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아무튼 그렇다. 줄기세포를 검색하면 과거의 상황들이 나열되니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윤리적 문제를 떠나서 연구 결과에 대한 과장과 사기가 난무한 사건이었다.

 

공학윤리를 이야기하면 항상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가 생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딜레마에 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더욱더 좋겠지만, 위기가 선택이 없이 더 좋아지긴 힘든 법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편안하게 아무 어려움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 지금 현재에 만족한다면 늘 그 상태 그대로 인 것이다. 사실 오히려 후퇴하는 것 같을 것이다. 다들 나보다 조금씩 발전하고 나아가는데 아무 위기가 없다면 그대로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일본 사회 문제가 생각난다. 일본이 아직도 80~90년대 버블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생각났다. 미국을 압도하는 경제력을 가졌으나, 더 발전하지 못하고 새로운 문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시대적 상황에서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도 결재를 받기 위해서는 손으로 가서 받고, 다른 통신사끼리는 문자도 안되고 (최근에 가능해졌다고 들었다), 와이파이 개념도 이해 못해서 화를 낸다는 통신사 직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각 가정에는 고유한 문화가 있듯이, 각 국가에도 고유한 문화가 있고 장단점이 있다. 꼭 일본을 내려 깔려는 목적은 아니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보고 있으면 한심하고, 저런 국가에 우리나라가 강제 치욕을 당한 게 너무 분할뿐이다. 아무튼 글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해가 쨍쨍한 좋은 휴일이다. 코로나만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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